조회 : 864
‘아들과 백두대간’ 이어 ‘우체국 동료들과 강원도 백두대간 종주기’ 펴내
강원지방우정청에서 서기관으로 재직 중인 김영식(58)씨와의 인연은 2013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 그는 아들과 함께한 백두대간 종주기 <아들아! 밧줄을 잡아라>를 냈다며 책 소개를 부탁했고, 이를 인연으로 설악산 취재를 함께했다.
시간이 흘러 그에게 반가운 편지 한 통이 왔다. 이번에는 우체국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한 백두대간 종주기를 책으로 펴냈다는 것이었다. 백두대간을 두 번씩이나, 한 번은 아들과, 또 한 번은 자신이 속한 직장의 동료들과 그 긴 여정을 함께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김영식씨는 평소 크고 작은 산을 즐겨 올랐다. 그러다가 2000년, 원주우편집중국에 근무하던 시절 직장 상사가 백두대간 종주산행에 도전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면서 대간 산꾼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동료들과 함께 2000년 10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진부령에서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1차 종주를 했어요. 지금도 천왕봉 정상에서 헹가래를 받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인 지리산 종주 때는 전·현직 선배 10여 명이 함께했어요. 그날 아침 지리산 천왕봉에서 보던 일출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는 전형적인 가장이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평소에는 직장일로, 휴일에는 백두대간 다닌다고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대화·소통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특히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김지수, 당시 중2)은 얼굴 보기가 힘들었고 어쩌다 한 번 만나면 한마디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아내는 “당신도 밖으로만 돌지 말고 집안 좀 살펴라” 충고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아들과 백두대간 종주를 함께하는 것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아들과 대화하고 산에서 먹고 자고 하다 보면 공부에 지친 몸이 튼튼해지고 더욱 더 돈독한 부자 관계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행히 아들이 순순히 따라나서더군요. ‘산에 가면 토요일 수업에 빠질 수 있다’고 구슬렀거든요. 그때부터 백두대간 산행 기간 내내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시작되었어요.”
“댓재에서 백봉령 구간을 넘을 때였어요. 고1이었던 아들은 출발 때부터 툴툴대며 따라왔는데 결국 두타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사달이 났지요. 5만 원을 주면서 ‘산을 내려가서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진짜 가더라고요. 그런데 웬걸요. 집에 갔더니 엄마와 누나로부터 ‘아빠를 산에 두고 온 배신자, 의리 없는 놈’이라면서 핀잔을 받았대요. 그날 이후로 아들은 더 이상 산행하면서 툴툴대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아들과의 백두대간 종주는 10년 만에 마쳤고, 그 과정은 두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현대를 사는 아버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그의 책을 보고 자녀들과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팬들도 생겼다. 그리고 또 <대청봉 편지>라는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이번에는 우체국 동료 직원들과의 백두대간 종주기다.
백두대간은 만병통치약
“2011년 5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4년 5개월간 연 15회에 걸쳐서 진행한 강원도 백두대간 종주기입니다. 경북 봉화 춘양 도래기재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진부령까지 총 284km 이르는 산길이지요.”
이번 종주도 아들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생각했을 때와 계기가 비슷했다.
“직장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동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많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매일 같이 술을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백두대간 종주였어요.”
워낙 바쁘게 일하는 직장인들인지라 백두대간 전 구간 대신 강원도 구간만 하기로 했다. 강원도 사람이 강원도의 백두대간을 걷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처음에는 잘해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가면 갈수록 재미를 붙이는 동료들이 많아졌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피재(삼수령)에서 댓재를 넘을 때 온종일 비가 내렸다. 얼굴과 배낭이 온통 빗물로 젖었고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도저히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천신만고 끝에 12시간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삼척 하장의 삼겹살집에서 소주로 하산주를 하는데 세 아이의 엄마였던 여직원(안현주)이 ‘애 낳는 것보다 힘들었다’면서도 ‘멋모르고 도전했지만 이렇게 이루어내서 매우 보람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가슴이 뭉클했어요.”
2013년 4월 말에는 국립공원 헬기를 타고 동료들과 함께 설악산 중청대피소에 ‘대청봉 우체통’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우체통으로 현재도 설악산 명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이렇게 산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그 힘든 백두대간 종주를 아들과 함께,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일까.
“산은 나의 벗이자 스승이고 의사이자 어머니 품속입니다. 외로울 땐 벗이 되어 주고, 힘들고 어려울 땐 무언의 격려로, 삶의 좌표를 잃고 방황할 때는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깊은 슬픔과 고통으로 아파할 때 산에 들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내가 기쁘거나 슬프거나 상관없이 언제든지 찾아가기만 하면 대답을 주고 위로해 주는 마법사였어요. 산은 나에게 은총의 보물 상자죠.”
그는 <대청봉 편지> 독자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생각이다. 직장 내외에서 연락이 많이 오고 북 콘서트 요청도 들어온다고 한다.
“글 쓰는 산악인이 되고 싶다는 독자가 많아요. 그런 독자에게 내가 가진 작은 재능을 나누고 싶어요. 선조들이 기대고 살아온 백두대간 자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의 이야기와 백두대간의 알려지지 않은 전설들을 취재해 글로 쓸 계획도 있습니다.”
그는 지인들에게 ‘마태오의 희망편지’란 글을 메일로 보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는 고마운 분들께 드리는 작은 헌사다. 2017년 1월부터 시작해 어느새 100번째 편지를 앞두고 있다. 산에 드니 산처럼 넓은 마음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김씨는 앞으로도 산을 바라보고 살고 산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