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9년 4월 28일자 2면
[책읽는 경향] 의미수학
강석훈 서울대 의대 교수·시나리오작가
ㆍ수학, ‘의미’ 있는 곳에 ‘답’이 있다
얼마전 사채업자에게 300만원을 빌린 여대생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빚을 갚지 못해 비극을 당했다는 뉴스를 봤다.
사채업자들이 제시하는 ‘간편 대출’은 꼼꼼히 따져보면 터무니없는 이율계산으로 자기들 배만 불리는 것이다.
계산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숫자와 친해져야 한다.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려면 먼저 크레용과 물감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문제. 수학학원에 보내놨던 유치원생 아들이 혼자서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뛰어내리기 놀이를 하고 있다. 뒤늦게 이를 발견한 엄마가 아이를 심하게 야단친 후 수학학원에 보냈다. 과연 엄마의 행위는 아들의 수학능력 개발에 도움을 주었을까.
정답은 ‘아니요’다. 수보다 양에 대한 개념 확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양감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지나친 숫자교육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이 아이는 어느 정도 높이가 얼마만큼의 충격을 주는지 느끼면서 양감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양감을 느껴야만 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계산도 잘 할 수 있다.
요즘 억대 수입을 올리는 TV 스타들이 워낙 많다보니 ‘억’이란 수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1원짜리 한 개의 지름을 약 1㎝라고 할 때 1억원을 늘어놓으면 무려 1000㎞나 된다.
서울부터 1원짜리 동전을 하나씩 깔기 시작하면 바다 건너 제주도를 지나치고도 남는 것이다.
숫자를 배울 때 천·만·억 등의 이름만 외우는 것은 숫자와 계산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길이다. 그보다 먼저 수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고 감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의미수학>(장은성·BG북갤러리)은 수학을 배우는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수학에 대한 편견과 수에 대한 공포감을 없앨 수 있으면 좋겠다.
<강석훈 서울대 의대 교수·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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