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누가 당신이 죽기 전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한 가지만 가지고 간다면?’이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아들과 함께한 백두대간 산행’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강원지방우정청에서 우편물류과장으로 근무하는 김영식(55)씨가 8년간 아들 김지수(23)군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한 이야기를 묶어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아들아! 밧줄을 잡아라>는 백두대간 종주의 생생한 기록과 아버지와 아들 간의 좌충우돌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백두대간 에세이다.

김 과장이 지수군과 백두대간 종주를 하기로 한 것은 2004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 다니랴, 주말엔 산에 다니랴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식 교육은 아내에게 떠넘기다시피 했었죠. 그러다보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당시 15세, 중2)과 점점 벽이 쌓여 갔어요.”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아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느라 바빠 제대로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다. 그나마 어쩌다 한 번 마주치면 소 닭 보듯 데면데면했다. 고민하던 김 과장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백두대간 종주. 아들이 쉬이 따라나설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지수군은 “산에 가면 토요일 수업에 빠질 수 있다”며 뛸 듯이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한두 번 갔다 오면 되겠거니 했던 것이 장장 8년이나 걸릴지 누가 알았겠어요? 지수는 산에 갈 때마다 힘들어 했어요. 하지만 산은 아들과 저를 끈끈하게 묶어 주는 통로였지요. 산에서 아들은 이제껏 말하지 않았던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다가왔어요. 무뚝뚝한 아버지였던 저는 친구 같은 아버지로 변하고 있었죠.”

힘들어서 눈물을 흘렸던 순간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속리산 늘재에선 해가 진 후 하산길에서 길을 잃고 울었고, 비 내리는 봉화산에선 빗물 섞인 라면을 꾸역꾸역 먹으며 울었고, 이른 새벽안개 낀 어둠속에선 가시밭에 넘어져 피를 뚝뚝 흘리며 울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울었던 순간보다 웃었던 순간이 훨씬 많았던 8년이었다.

“지리산 벽소령 밤하늘에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던 아름다운 별빛과, 소백산 도솔봉 아래 펼쳐지던 굽이치던 산 물결을 보며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대야산과 희양산 직벽바위를 목숨 걸고 올라선 다음에는 살아 있음에 환호했습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의 별자리를 헤아릴 때마다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8년 동안의 백두대간 종주에 도움을 준 이가 어디 한둘이겠냐만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역시 가족이다. 아내와 딸은 오랫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자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도 잊을 수 없는 은인들입니다. 각 지역에 사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저희를 태워 주었어요. 그것도 공짜로요. 길 가다 만난 어떤 농장 주인은 갓 딴 사과와 포도를 배낭에 넣어 주었고, 빼재 사는 어르신네는 과일과 막걸리, 라면을 주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군 제대 후 벤처기업 창업을 준비하는 어엿한 청년이 된 아들을 보며 김 과장은 “통일이 되면 아들과 아들이, 또 그 아들이 대를 이어 함께 북한 땅의 백두대간을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나의 산행기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