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출생의 소설가 양은영씨가 장편소설 ‘일곱 번째 남자’ 이후 오랜만에 신작 ‘그 숲으로 가는 길(도서출판 BG북갤러리·1만1,500원)’로 인사한다.

　소설의 배경은 산업화가 한창 가속화되던 1970년대 서울. 그 시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뚜렷하게 구분되던 격변의 시기에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세상 속에 던져진 빈곤층 소녀의 눈에 비친 기득권층의 삶은 처절하고도 눈물겹게 그려진다.

　아버지의 죽음 후 가세가 몰락하고, 먼 친척집으로 남의집살이를 간 영신은 그곳에서 주인집 딸의 가정교사인 대학생 용하를 만나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용하의 도움으로 검정고시를 보며 놓았던 학업의 꿈을 다시 꾸게 되던 와중에 갑작스레 터진 이리역 폭발 사건으로 영신 가족의 비극은 한층 더 가속화된다.

　또 다시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둔 채 절망에 빠진 가족들을 대신해 국밥집에서 일을 하던 영신은 술집에 나가던 언니의 동거남에게 몹쓸짓을 당하며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데….

　소설의 특징은 선악으로 대립하는 양극이 아닌 공존하는 현실로 최대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영신이라는 한 소녀가 온갖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스스로의 손으로 운명의 길을 개척해나가며 여인으로 거듭나는 성장소설이자, 오랜 시간 가슴속에 간직했던 사랑을 이뤄가는 연애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70년대의 추억을 가진 이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전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눈여겨보아야 할 포인트는 주인공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면면을 통해 절망과 희망의 능선을 반복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영신의 주변에는 다양한 계층의 여러 유형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가족은 나 몰라라 하며 제 한 몸 편하자고 자청해 술집 작부가 되어 버린 언니, 가족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였으나 폭발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절망에 빠진 오빠, 사로고 실종된 막내아들,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무기력한 어머니까지 무겁고 암울하기만 하다.

　반면에 집을 떠나려는 영신에게 엽전이 든 복주머니를 건네며 잡아주던 할머니나 봄바람처럼 그녀의 가슴을 두드린 용하, 친오빠보다도 더 친오빠 같은 장사장 등 영신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도 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헤쳐나가는 한 여인의 여정은 이를 장치한 소설가의 삶의 궤적과도 닮아 보인다.

　실제 양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사는 것이 외롭고 힘들고 슬프고 억울할 때, 눈물처럼 글을 썼다. 그 눈물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의 글을 읽고 힘을 얻은 것처럼”이라고 했다. 한 때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회의와 좌절에 빠지기도 하면서, “두 번 다시 글을 쓰지 않으리라, 아니 발표하지 않으리라” 오기를 부리기도 했으나, 자신이 갈 길을 역시 활자의 길임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그다.

　소설 속 주인공 영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 그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영혼을 보이고 싶은 것이다. 글은 영혼과 영혼이 소통하는 길……”이고, 영신은 기꺼이 그 길을 걷기로 한다. 작가 역시 영신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끊임없이 활자의 길을 걸으리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아로새기고 있다.

김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