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구한 말의 역사와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침 tvN의 교양예능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편을 연달아 내보냈다. 강사는 한국사가 주 영역인 최태성이 나섰는데, 전달력도 좋지만 단정적이지 않은 표현이 이전 설민석의 단정적인 화법과는 달라 거부감이 없었다. 

동아시아 전쟁사에 대한 관심은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근대화는 어땠기에 우리 민족은 고스란히 당하기만 했던가? 우리는 일본을 그저 무식한 사무라이들이 통치하는 막부체제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메이지유신이 성공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라거나 주도한 인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으니까.

일본은 과연 어떻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제국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동아시아의 정세는 어떠했을까,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를 일찍 시작할 수 있었을까, 일본은 왜 미국까지 전쟁에 끌어들였을까, 그런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런 의문들은 학창시절 세계사를 배우면서 들었던 의문이지만, 해소할 만한 계기와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 방송이 그걸 촉발시켰다.

먼저 시작한 건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살림). 이 책은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수 출신의 저자 하라 아키라가 전공인 전시경제사 측면에서 전쟁비용 조달이나 경제공황 등 당시의 경제적인 배경에 대해 쉽게 서술하고 있다. 일본 근대사의 핵심을 간략하지만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전쟁 당시 사람들의 심정을 그린 문학작품이나 회고담을 인용하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청일전쟁이 어떤 의미였는지, 또 러일전쟁은 왜 상처뿐인 무승부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 전쟁이 모두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나 청일전쟁을 제1차 조선전쟁, 러일전쟁을 제2차 조선전쟁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특기할 만하다. 

이어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민음사).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로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의 이 책은 일본 근대화의 기점인 메이지유신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지금의 도쿄를 중심으로 한 도쿠가와의 에도 막부가 자기 혁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지 보여준다. 대부분의 구체제는 끝까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반사인 데 반해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어떻게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채로운 점은 사무라이들이 학적 네트워크와 학당(學黨)을 만들어 사대부적 정치 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사무라이들의 독서모임인 회독(會讀), 그리고 조선의 상소와 비슷한 상서(上書)의 활성화 등도 특기할 만하다. 

연이어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21세기북스)로 이어갔다. 서울대 명강의 시리즈로 구어체 문장에 300쪽 정도의 문고판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메이지유신의 토대를 닦은 4명의 사무라이인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일본 근대사를 엿볼 수 있었다. 전 시대를 훑는 통사와 함께 읽으면 좋을 인물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일본사>(뿌리와이파리)도 아주 새롭게 접근했다. 이 책은 부제가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인데, 전직 외교관인 이상목 저자가 생활문화사적으로 접근한 점이 매력적이다. 메이지유신이 가능하게 했던 근저에는 에도시대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정치 이상으로 중요했다고 밝히고 있다. 역사를 바꾼 우연이라는 제목으로 에도의 탄생과 참근교대제를 들고 있다. 

도쿠가와 막부가 허허벌판인 에도에 터를 잡고 치수를 비롯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방의 다이묘들을 통제하기 위한 인질제도가 참근교대제를 실시했는데, 이 두 가지가 뜻하지 않게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이고 에도를 대도시로 만들고 시장을 형성하는 낙수효과를 만들었다. 

그밖에 여행천국으로 불릴만큼 여행의 대중화가 이어지고, 출판문화의 융성, 신문과 광고 전단의 등장, 일본 지식계를 강타한 서양 해부학, 문명과 언어의 통로라 이름 붙일만한 사전 편찬 등의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이 외에도 <메이지 이야기>(BG북갤러리),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뿌리와이파리) 등을 통해 일본 근대사를 대항해 시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짚어보았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영원한 패자(霸者)인 중국의 근대화는 어땠을까?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던 중국은 왜 반식민지 상태에서 허덕였을까? 여진족, 즉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일본의 근대화와는 달리 황후의 섭정, 위안스카이 이후 군벌의 등장, 여기에 서구 열강은 물론 일본까지 이권을 위해 분할 점령, 조차, 철도 부설 등의 수탈을 감행하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베이징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이영옥은 <중국 근대사>(책과함께)를 통해 1800년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는 150년의 중국 근대사를 꼼꼼하게 훑는다. 소수였던 만주인이 다수의 한인을 통치하던 청나라 특유의 통치체제를 살펴보고, 왕조 체제의 균열을 가져온 청영아편전쟁, 이후 태평천국운동 등 격랑의 과정을 그린다.

청나라 조정이 무너진 계기가 된 의화단 사건, 황제에 오르려 했던 위안스카이와 그에 맞서는 혁명세력 간의 대립, 군벌들의 이권 다툼, 시민 세력의 등장 등이 이어지고,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대립으로 내전 상황을 맞이하고 제국주의 일본과의 싸움을 위해 두 차례에 걸친 국공합작을 추진하기도 한다. 

열강들의 침탈로 오랫동안 치욕의 역사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이 모택동의 공산당으로 통일국가를 이뤄낸 점은 어떤 측면에서 불가사의해 보인다. 엄청나게 넓은 국토 면적이 완전한 식민지를 면할 수 있었고, 초기 군사력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 우위에 있던 국민당이 보잘 것 없던 공산당을 패퇴시키지 못한 것도 드넓은 국토 면적 때문이었다. 

18개의 산맥과 17개의 강을 건넌 홍군의 대장정은 피폐해진 농촌을 토지혁명을 통해 지지기반으로 만든 게 주효했지만, 총 연장 1만 2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치고 빠지면서 유격전술을 가능하게 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광대한 영토 탓이다. 역사는 이렇듯 불가사의하다. 명운이 달려 있는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결국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중국이 1,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다는 점이다. 영국, 미국처럼 전세를 기울게 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식민지 조선과 일제 강점기를 거친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국민당과 내전을 치르던 중국공산당의 병력이 막바지에는 200만 명에 달했으니, 우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최근 동북공정을 비롯해 미국 이후의 세계질서의 재편을 꿈꾸는 중국의 근대를 보면서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점쳐보는 기회였다. 

사람들은 역사 앞에서 겸손해진다고 했다. 골방에 움츠리고 있는 나에게 동아시아 근대사는 생의 묘약이 되기에 충분했다. 미몽에 사로잡혀 있던 중세사회가 근대사회를 맞으면서 격렬한 자기 변신을 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변화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이어서 그 당시의 인물들은 과연 어떻게 삶을 살아내었는지 궁금했다. 역사소설로 옮겨가게 된 배경이다.

신기수 우버객원칼럼니스트

매일경제